올해 가을쯤 되었을 때, 어느 때보다 산만하고 집중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업무 범위가 넓어지면서 어쩔 수 없지, 라는 생각도 했지만, 업무 범위가 넓어지면서 해야 할 일에 대해 뭐 하나 제대로 완성하는 건 없으면서 집중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칼 뉴포트의 '하이브 마인드',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 같은 책들이 2023년 올해 인기였고, 그 책들을 재미있게 봤지만, 나의 어려움을 디지털 디톡스를 하는 것, 알림을 줄이는 것, 이메일이나 슬랙을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가 여러 조직이 실시간으로 Sync되어야지만 돌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하는 나 혼자 집중력을 높여보겠다고 알림을 끄는 선택도 할 수 없었다.

퍼포먼스는 떨어지고, 집중도 못해서 기분이 나빠지고 있는 와중에 혼자 끙끙하다가 나한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다시 읽은 것이었다 (올해만 2번 다시 읽었다). 소설가로 온전히 혼자서 소설을 쓰는 일과 여러 명이 같이 일해서 결과를 만드는 과정의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Product manager의 일은 크게 다르지만, 하루키의 '직업'에 대한 생각을 곱씹어 보며 나의 '직업'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리했다. 나한테 도움이 되었던 몇 구절을 옮겨본다. 하루키가 소설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아서 감사하다고 표현한 만큼, 나도 내가 하는 일을 잘하고 싶고 이 기회를 부여받아 감사한 기분이기에 말이다.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소중히 여겨온 것은 '나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라는 솔직한 인식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그 기회를 붙잡았고, 또한 적지 않은 행운의 덕도 있어서 이렇게 소설가가 됐습니다.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얘기지만, 나에게 그런 '자격'이 누구에게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어진 것입니다. 나로서는 일이 그렇게 된 것에 대해 그저 솔직히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자격을 -마치 상처입은 비둘기를 지켜주듯이-소중히 지켜나가면서 지금도 이렇게 소설을 계속 쓸 수 있다는 것을 일단 기뻐하고 싶습니다. 그다음 일은 또 그다음 일입니다. p.58 소설가가 된 무렵


올해 내 퍼포먼스가 떨어진 것은 자연스럽게 인정하기로 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고 할만한 일은 많지 않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바뀌었고, 해야 하는 일이 조금씩 바뀌었고,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바뀌어서 조합하고 보면 새로운 일이었던 것 같다. 원래 알던 사람과 하는 일이라도 관계가 바뀌면서 다시 정리해야 할 것도 많았다.

퍼포먼스가 떨어진 것에 대해 개선해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보다 일단 인정하는 게 먼저였다. 인정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로 어쩌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대충 '아마 이럴 것이다'라는 어림짐작으로 소설 비슷한 것을 몇 달 동안 써본 것인데, 다 쓴 것을 읽어봤더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별로 재미가 없어요. '에이, 이래서는 아무짝에도 못 쓰겠다' 하고 실망했습니다. 뭐랄까, 일단 소설의 형식은 갖췄는데 읽어도 재미가 없고, 다 읽은 뒤에도 마음에 호소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직접 쓴 사람이 그렇게 느낄 정도니 독자는 더더욱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역시 나는 소설 쓰는 재능은 없구나' 하고 힘이 쭉 빠졌습니다. 평소 같으면 거기서 꺠끗이 포기했을 텐데 내 손에는 아직 진구 구장 외야석에서 얻은 에피퍼니의 감각이 또렷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니 멋진 소설을 쓰지 못했어도 그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설을 썼는데 첫판부터 그렇게 술술 멋진 작품을 써낼 수 있을 리가 없지요. p.48 소설가가 된 무렵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하는 일, 내가 하지 말아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방향을 명확하게 하는 건 필수였다.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싶은 방향을 명확하게 하는 일은 다른 문제였는데, 일단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조언부터 보자. 말하기 쉬운 이야기지만, 항상 어려운 일.

나 자신의 체험에서 따라 생각한 것인데, 자신만의 오리지널 문체나 화법을 발견하는 데 우선 출발점으로서 '나에게 무엇을 플러스해간다'는 것보다 오히려 '나에게 무언가를 마이너스 해간다'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너무도 많은 것들을 끌어안고 있습니다. 정보 과다라고 할까 짐이 너무 많다고 할까. 주어진 세세한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자기표현을 좀 해보려고 하면 그런 콘텐츠들이 자꾸 충돌을 일으키고 때로는 엔진의 작동 정지 같은 상태에 빠집니다. 그러니 어떻게도 뛰어볼 수가 없어요. 그렇다면 우선 필요 없는 콘텐츠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정보 계통을 꺠끗하게 해두면 머릿속은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꼭 필요하고 무엇이 별로 필요하지 않은지, 혹은 전혀 불필요한지를 어떻게 판별해나가면 되는가. 이것도 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말하자면, 매우 단순한 얘기지만, '그것을 하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라는 것이 한가지 기준이라 생각합니다. 당신이 뭔가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데 만일 거기서 자연 발생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아낼 수 없다면, 그걸 하면서 가슴두근두근 설레지 않는다면, 거기에는 뭔가 잘못된 것이나 조화롭지 못한 것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때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즐거움을 방해하는 쓸데없는 부품, 부자연스러운 요소를 깨끗이 몰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p.106 오리지낼리티에 대해서


올해는 어느 때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 피드백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Product manager로 일하면서 어느 때는 그렇지 않았냐 라고 생각하면 늘 그렇긴 했지만, 내 맘대로 할 작은 구석이 남아 있거나, 나는 재미있지만 다른 사람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야들이 있었다. 올해는 내가 하는 일의 모든 것에 대해 다른 사람의 피드백이 있었고, 예전보다 스트레스였다. 나는 나와 같이 일하는 조직의 주어진 상황과 제한된 리소스를 따져서 정할 수 밖에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걸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결과와 목적 중심으로만 의견을 제시한다. 이 차이에 따라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게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 과정을 통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곱씹어 인정하기로 했다. 단, 나의 관점을 잃지 않은 채로.

상대가 들려준 말을 그대로 다 받아들이는가 하면, 그렇게는 안 됩니다. 내 쪽에서는 오랜 시간을 들여 기나긴 소설을 이제 막 써낸 참이고, 양생에 의해 다소 식었다고는 해도 머릿속은 아직 충분히 흥분 상태이기 때문에 비판적인 말을 들으면 화가 납니다. 저절로 감정적이 됩니다. 거친 말다툼을 하는 일도 있습니다. 타인인 편집자를 상대로 그런 험한 말은 할 수 없으니까 그런 면에서는 한 식구라는 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 하지만 그런 '제삼자 도입' 과정에서 내게는 한 가지 개인적인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트집 잡힌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어찌 됐던 고친다'는 것입니다. 비판을 수긍할 수 없더라도 어쨌든 지적받은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처음부터 다시 고쳐 씁니다. 지적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에는 상대의 조언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고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방향성이야 어찌 됐든, 다시 자리 잡고 앉아 그 부분을 고쳐 쓴 다음에 원고를 재차 읽어보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이전보다 좋아졌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p.156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 - 장편소설 쓰기


돌아가는 이슈를 한번만 쓰윽 보고 핵심을 딱 집을 수 있는 천재였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난 그러지 못하고 시간을 들인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바로 떠오른 해결책을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내 머리 속에 떠오른 해결책이라도 디테일한 상이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으면 쉽사리 선택하지 못한다. 플랫폼의 정책들은 한 번 선택하고 나면 변경하기가 어렵고, 선택한 후 정책과 연결되어 있는 각종 이슈들이 어떻게 되는지 세세하게 머리 속으로 꼭 그려봐야 한다. 내 생각의 속도가 발목을 잡을 때가 있었는데 올해 가을엔 커머스가 그랬고, 겨울엔 푸드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