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사람들마다 추천한 ‘먼저 온 미래’를 드디어 읽었다. AI 기사는 넘치고, 기술 업데이트도 끝이 없다. 이 타이밍에 책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지난 1년간 AI를 ‘찍먹’했다. gpt를 적용해서 사용자 대상 서비스를 개선해보기도 하고, 누구나 예상하는 영역(예시: 메뉴 이미지 검수)에 AI를 도입했고, 런칭하면서 사건 사고도 겪었다. 내 일은 그렇게 크게 바뀌지 않았다. 리서치할 때 적극적으로 쓰고, 내 논리를 검토할 때도 쓴다. 번역과 요약도 맡긴다. 결론적으로, AI는 나를 더 빠르게 도왔지만 내 일을 대체하지는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PM들이 PRD대신 프롬프트 셋을 쓴다는 이야기는 신선했지만, 굳이 지금 당장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이 책은 2016년 알파고 이후 바뀐 바둑을 기록한다. 저자는 인터뷰를 토대로 **‘바둑의 정의가 달라졌다’**고 진단한다.

“제가 배우던 당시에는 상대가 싸움을 걸어왔을 때 피하면 약간 비겁하다는 인식도 있었고, 모양이 안 좋으면 이런 바둑이 어디 있냐며 혼나기도 했었거든요. 그런데 요새는 프로기사의 바둑도 AI추천수와 일치율이 얼마나 높은지에 따라 잘 뒀냐, 못 뒀냐를 평가해요.” - 이다혜 5단 ”지금 저는 되게 슬퍼요. 지금 기사들이나 학생들이 두는 바둑은 저희가 배운 바둑이 아니에요. 전혀 다른 바둑이에요. 예전에는 정석이 있어도 그걸 비틀 수가 있었어요. 그러면 그때부터 또 난리가 나죠. 살짝 비튼 것에 대한 연구가 막 시작되고, 또 다른 변화가 생겨요. 약간 개성있는 기사가 정석을 비틀면 거기서 변화들이 조금씩 생기고, 정석들이 조금씩 변화했거든요. 예전에 우리가 만들었던 정석은 이렇게 여러 기사가 많은 걸 경험하고 연구하면서 만들어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비틀 수가 없어요. AI가 정해주니까. AI를 사용하면 이길 확률이 바로 뜨니까 ‘이 수는 아웃’ 이렇게 돼요.” - 김효정 3단 ”알파고가 나오기 전의 기보와 지금의 기보는 완전 다릅니다. 예전 기보는 역사적인 가치 외에는 없는 거에요. 인공지능의 기보가 내용상으로 훨씬 더 위거든요. 인공지능의 기보를 보면서 ‘이건 이렇게 둬야 되는구나, 여기서는 이렇게 둬야 되는구나’ 배워야 하는 거에요.” - 이세돌 9단

대국을 기록한 기보를 보면서 승패를 넘어 기사 사이에 주고받음의 맛을 즐기던 바둑은 이제 좌표마다 승률이 표시되는 ‘수치의 스포츠’가 됐다. 창의와 예술이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믿었던 기준이 흔들렸다. AI는 바둑의 예술성을 정복했고, 이 책이 쓰여진 2025년 현재, 다른 분야도 다를 것이 없다. 바둑이 먼저 겪은 변화를 프로덕트도 마주하게 될 것이다.


협업의 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최고수들은 공동연구를 했다. 특히 한국과 중국 기사들이 강한 이유는 공동연구가 활발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일류 기사들이 포석을 놓고 토론을 벌이기도 하고 상대 대국자의 스타일을 함께 분석하기도 했다. … 2018년이 되어 바둑 AI 프로그램들이 보급되자 공동연구를 할 이유가 사라졌다. 인간 기사들이 며칠 동안 토론한 것보다 인공지능이 몇 분 만에 내놓는 대답이 훨씬 뛰어난 수였다. ”저는 공동연구를 되게 좋아했어요. 서로 ‘나는 이렇게 생각해.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러면서 돌을 이렇게도 놓아보고 저렇게도 놓아보고, 각자 결론을 내리죠. 그렇게 공동연구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저희보다 훨씬 더 센 존재가 있잖아요. 저희끼리 토론하는 의미가 없어졌어요. 이제는 인공지능이 없으면 공부를 못하는 수준이에요.” - 오정아 5단

서로의 사고 과정을 공유하면서 실력을 키우는 시대에서 AI를 만나고 난 이후, 기사들은 AI와 홀로 복기하는 시간을 늘렸다고 한다. 더 좋은 질의 해법을 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시간을 맞춰서 하는 것보다 나 편한 시간에 아무때나 할 수 있는 것이 더 좋았던 것 같다.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변화가 예상된다. 팀원들이 모여 브레인스토밍을 하기 보다는 각자 AI와 20분씩 1:1 탐색을 먼저 한다. 문제 전반을 살펴보고 → 아이디어 5개의 장단점을 정리 → 회의는 수렴과 우선순위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개발도 비슷하다. 코드 리뷰도 라인 단위의 품질 평가는 AI에게 맡기고, 전체적인 아키텍처나 비지니스 요구사항에 대해 집중적으로 사람이 논의할 것이다. 그리고 협업의 시간은 줄어들 수도 있다.


과거의 성공 플레이북, 시니어의 직감은 ‘기본값’이 아니다

“제가 예전에 어떤 아마추어를 가르치다가 ‘이런 수는 절대 두지 마라’라며 혼을 낸 적이 있었거든요. 빈삼각이라고 하는 모양이었는데요. 설마 인공지능이 이걸 좋은 수라고 하지 않겠지 하고 기보를 넣어봤더니 그 장면에서 바로 그 수가 블루스팟이었던 거에요. … 정석 사전이라고 두꺼운 책이 있었는데 그게 거의 쓸모가 없어졌어요.” - 정수현 9단 알파고 이전에는 인간 최강자끼리 바둑을 두는 동안 그 대국에 대해서는 당사자인 두 대국자가 가장 잘 알았다. 알파고 이후에는 자신이 두는 바둑의 형세를 가장 모르는 사람이 바로 두 대국자다. 해설을 맡은 프로기사나 그 해설을 듣는 시청자들은 인공지능 덕분에 실시간 형세와 다음에 두어야 할 수를 훨씬 더 정확히 안다. 알파고 이전 바둑 팬들은 일류 기사들의 대국을 보다 이해가지 않는 수가 나오면 존경심을 품고 ‘저 기사는 왜 저 자리에 돌을 둔 걸까’하며 고심했다. 이제는 AI 추천수와 비교하며 ‘저 양반은 꼭 중반에 저런 실수를 잘하더라’하고 품평한다.

넓은 바둑판에 돌을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초반 50수에 대해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성공적이라는 수, 정석이 있었는데, 그 수들이 의미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필드에서 가장 대체하기 어려운 전문가는 학습, 관찰, 업무 현장에서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암묵지(말로 표현하거나 문서화하기 어려운 경험 기반 지식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전문가들은 필드에서 수 많은 시도를 하고 성공/실패를 보며 암묵지를 쌓아왔는데, AI가 특정 분야에 집중할 경우,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암묵지의 노하우를 훌쩍 뛰어넘는 순간이 많은 분야에서 올 것이다. 기존의 성공방정식, “나 때는 이렇게 하면 잘됐다” 라는 시니어의 직감은 더이상 기본값이 아닐지도 모른다.

프로덕트의 성공 방정식, 플레이북의 반감기는 짧아질 것이다. 옛 성공 공식을 기본값으로 두지 말자. 시니어의 직감, 암묵지는 여전히 귀하다. 다만 직감은 가설 후보로 올리고, 우선 순위는 실험과 지표가 정한다.


서비스가 비슷해질 수 있다 → 의도적으로 독창성을 설계하자

바둑을 공부하면서 그런 여러 스타일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기사를 찾고 따라 두고 배워가면서 나만의 뭔가를 만들어내는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그건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었죠. 그런데 요즘 기사들은 스타일이 없어요. 이제 초반은 누가 얼마나 더 정확하게 AI 포석을 외우느냐, 얼마나 AI 일치율을 높이느냐를 지향하죠. 스타일이 나올 수가 없어요. 개성과 다양성이 사라진 게 저는 아쉬워요. - 김효정 3단 바둑의 다양성이 좀 줄어들었고, 재미가 다소 없어지기는 했지만, 하지만 바둑의 수준은 굉장히 올라갔어요. 이걸 두고 ‘바둑의 수준은 높아졌지만 보는 재미가 없어져서 아쉽다’라고 하시는 분들이 더 많으리라 생각해요. 저는 완전히 반대입니다. 기풍은 기사가 본인을 증명하는 방법이죠. 그런데 그런 캐릭터나 퍼스낼리티라는 건 승부에 비하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해설을 하지만 저는 바둑의 아름다움이라는 표현을 쓰지도 않고,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 최선을 다한 바둑에는 다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 이희성 9단

프로 세계는 결국 승부가 기준이다. 이기고 지는 최종 판단이 있는 세상에서 자주 지지만 나는 나의 스타일을 유지하겠다는 프로기사가 존재하기는 어렵다. AI가 바둑의 정답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바둑의 다양성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